CNET Korea뉴스신제품

중장년 노린 미러리스, 올림푸스 PEN-F의 뒷이야기

“1963년 첫 디자인을 현대풍으로 재해석했다”

올림푸스 본사 디자인 센터 노하라 타케시 과장. PEN-F를 시작 단계부터 직접 디자인했다.

(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올림푸스한국이 1일 국내 소개한 새 미러리스카메라, PEN-F는 올림푸스 카메라 사업 8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제품이다. PEN 시리즈는 가볍고 쓰기 편해 여성들이 주로 찾는 카메라였지만 PEN-F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배터리와 메모리를 넣은 본체(바디) 무게만 해도 중급자용 DSLR 카메라와 비슷한 427g이나 된다. 여러 버튼이나 다이얼이 복잡하게 달린 것도 눈에 띈다.

가격도 만만찮다. 아직 정확한 가격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도 본체만 15만 엔(한화 약 149만원)이나 한다. 올림푸스한국은 여기에 각종 렌즈를 포함한 번들킷을 판매할 예정인데 유럽에서는 14-42mm 렌즈를 포함한 번들킷이 1천399유로(한화 약 182만원)다. 평소 PEN 시리즈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이라면 가격과 디자인에 의아해하기 마련이다.

중장년 취향을 노린 레트로 디자인

이날 한국을 찾은 올림푸스 본사 디자인 센터 노하라 타케시 과장은 PEN-F를 시작 단계부터 직접 디자인했다. 그에게 한층 묵직해진 카메라에 대해 묻자 “이번 제품은 극단적으로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카메라가 너무 가벼워도 싸 보인다는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이다. 본체 안에 내장된 5축 손떨림 보정 시스템도 제법 무게가 나간다. 그래서 무거워졌다”고 답했다.

다시 디자인을 살펴보니 여성보다 남성들이 더 좋아할 만하다. 곳곳에 버튼과 다이얼을 달아 돌려보고, 눌러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노하라 과장은 “이번 제품은 1963년 필름 시절 디자인을 참조했다. 타겟으로 삼는 연령층을 너무 넓게 잡다 보면 오히려 더 디자인이 힘들어진다. PEN-F가 타겟으로 삼는 연령층은 50-60대 남성으로 좁혔다”고 설명했다.

각종 버튼이나 다이얼이 원형인 것도 눈에 띈다. 노하라 과장은 “예전에는 금속 물체를 가공할 때 돌려가며 깎아내야 했기 때문에 원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버튼이나 다이얼을 둥글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PEN-F의 각종 버튼과 다이얼은 일부러 원형으로 만들었다.

필름 카메라 시절 향수 자극하는 의외의 장치는⋯

요즘 나오는 카메라는 대부분 가볍고 들고 다니기 좋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다. 카메라 가방 안에서, 혹은 주머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보면 노출 조절 다이얼이나 모드 다이얼이 마구 돌아간다. 급하게 사진을 찍고 나서 나중에 확인하다 엉뚱한 결과물에 당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PEN-F는 여러 모드 다이얼에 걸리는 무게나 경도도 다르게 했다. 노출 다이얼은 확실히 고정되게 만들고, 수치를 조절하는데 필요한 서브 다이얼은 잘 돌아가지만 크리에이티브 다이얼은 제법 힘을 주어서 밀어야 밀린다. 노하라 과장은 “자세한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내부에 일정한 기준이 있다. 다이얼의 지름이나 표면 모양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종합적인 밸런스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PEN-F가 특이한 점은 또 있다. 기존 카메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사나 각종 인증마크를 담은 스티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 시절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나사는 철저히 감추고 각종 인증 마크는 레이저로 새겼다. 노하라 과장은 “제조 부서에 그야말로 머리를 숙여가며 부탁한 끝에 인증 마크를 새기기 위한 레이저 장비를 들여 놓았다”고 말했다.

기존 카메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사나 각종 인증마크를 담은 스티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격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디자인이 특징

PEN-F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하는 데는 다른 제품보다 1.5배 이상 시간이 더 걸렸다. 공작기기 일종인 CNC에 원형을 걸어놓고 퇴근했다 다음날 출근하면 나오는 원형을 가지고 여러 곳에서 피드백을 받아 조금씩 수정하는 작업도 20번 넘게 반복된다. 여기에 마감에 들인 정성만 해도 상당하다.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가격때문에 고민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노하라 과장은 “디자인을 할 때 가격만 따지다 보면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의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만든 다음 조금씩 타협했다. 하지만 꼭 디자인때문에 가격이 비싼 건 아니다. 2천만 화소급 센서와 5축 손떨림 보정 기능, 새로운 화상처리엔진인 트루픽Ⅶ 등 최신 기능이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깎아낸 모형으로 여러 곳에서 피드백을 받아 수정을 반복하는 작업도 20번 넘게 반복됐다.

“카메라는 예술을 위한 도구”

노하라 타케시 과장은 2004년 올림푸스 입사 이후 의료기기 디자인을 담당하다 2008년부터 햇수로 8년째 카메라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PEN E-P5, PL7, OM-D E-M5 등 올림푸스 주력 카메라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의료기기는 기능을 중시하지만 카메라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멋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 노하라 과장은 “멋있다”, “멋이 없으니까”라는 말을 즐겨 썼다. EVF(전자뷰파인더)가 카메라 중앙이 아닌 왼쪽에 자리 잡은 이유도 “얼굴이 가려지지 않으니까 멋있기 때문”이고, 원래 달려 있었던 그립을 들어내고 본체 뒷면을 깎아내서 엄지가 닿을 자리를 만든 것 역시 “심미성을 위해서”다.

끝으로 디자이너에게 카메라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노하라 과장은 “카메라는 사건이나 사고, 전쟁 등을 담는 ‘기록의 도구’다. 하지만 귀여운 자녀들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 ‘예술의 도구’이기도 하다. 다른 회사, 예를 들어 니콘이나 캐논 제품들이 스포츠 사진이나 각종 사건/사고를 담아 내는 것처럼, 올림푸스는 카메라를 ‘예술’에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PEN-F는 그립을 떼어내는 대신 뒷면을 깎아 엄지가 놓일 자리를 만들었다. 심미성을 위해서다.

권봉석 기자bskwon@cnet.co.kr

소비자들이 꼭 알아야만 손해를 안 볼 정보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합니다. 숫자만 잔뜩 등장하는 알맹이 없는 이야기는 빼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정보를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