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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세로영화제에 다녀 왔습니다

세로 화면을 모두 채우는 콘텐츠, 그 장점과 한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 온 모든 영상은 가로가 세로보다 길었습니다.

(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 온 모든 영상은 가로가 세로보다 길었습니다. 디지털방송이 대세가 되기 전 흔히 볼 수 있었던 SD 화질 영상도 화면 비율은 4:3으로 가로가 더 길었죠.

1996년 말 등장해 2006년 전후까지 ‘차세대 영상매체’로 꼽혔던 DVD 역시 720×480 화소로 가로가 더 깁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대세가 된 지상파 디지털 방송도 1920×1080 화소로 화면 비율은 16:9입니다.

4K UHD 역시 풀HD의 네 배 수준이라고 하지만 3840×2160 화소로 가로 폭이 더 깁니다. 우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가로가 더 긴 영상에 익숙해져 있었던 셈입니다.

길쭉한 화면을 절반만 채워서 보는 역설

그런데 가로가 더 긴 화면을 즐기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영상을 보는 디스플레이 역시 가로가 더 길어야 한다는 것이죠. 당장 우리 주위를 둘러 보아도 책상 위 모니터부터 거실 TV까지, 특별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16:9 화면을 큰 수고 없이 바로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도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같이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화면은 피처폰 시절부터 가로/세로 비율이 극단적으로 차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조작을 온전히 버튼에 맡긴 피처폰 화면은 1:1, 정사각형에 가까웠습니다.

모든 조작을 온전히 버튼에 맡긴 피처폰 화면은 1:1, 정사각형에 가까웠습니다.

버튼이 사라진 자리를 온통 터치스크린이 차지한 요즘 스마트폰은 어떤가요. 제조사에 관계 없이 대부분 가로보다 세로가 더 깁니다. 간혹 4:3 비율 스마트폰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손에 쥐기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동영상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신 적이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세로로 쥔 상태로 화면에 집중합니다. 화면을 가로로 돌려서 보는 사람들은 의외로 드뭅니다. 영상을 띄우고 남는 화면 아래 부분은 댓글 창이나 동영상 정보를 위해 쓰입니다.

세로 화면을 모두 채우는 콘텐츠는 없는가

결국 우리가 깨어나 잠들 때까지 바라보는 세로가 긴 화면을 온전히 활용하는 콘텐츠는 의외로 드물었던 셈입니다. 물론 엄지를 부지런히 위아래로 넘겨가며 보는 웹툰이나 인터넷 사이트는 전체 화면을 그대로 활용하지만 적어도 동영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스마트폰 화면에 불친절 했던 동영상 콘텐츠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16년 4월, 일본 6인조 아이돌 그룹 ‘리리컬 스쿨’이 공개한 뮤직비디오, ‘런앤런’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아이폰 화면 비율에 맞게 제작된 이 동영상에서는 여러 멤버가 화면 속 앱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뮤직비디오는 기존 영상과 달리 철저히 9:16 비율, 다시 말해 굳이 화면을 돌려 볼 필요 없이 한 손으로 들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은 조회수 60만 건 이상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세로 비율로 제작된 리리컬 스쿨의 뮤직비디오, ‘런앤런’

키다리 스마트폰의 고민 “볼 거리가 없다”

우연의 일치일 수는 있지만 올 상반기 국내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모두 가로가 깁니다. 지난 10일 국내 출시된 LG전자 G6는 테두리를 극단적으로 줄인 대신 18:9 화면을 달아 화제가 됐습니다.

머지 않아 공개될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8 역시 연일 TV에 등장하는 티저 영상만 봐도 세로로 긴 디스플레이를 달고 있을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세로가 긴 화면을 단 키다리 스마트폰에도 고민은 있습니다. 이 디스플레이로 즐길 콘텐츠가 아직은 많지 않다는 것이죠. 이런 콘텐츠 부족 현상은 특히 동영상에서 두드러집니다. 아직은 16:9 비율 영상이 더 흔합니다.

시장에 가장 먼저 18:9 비율 스마트폰을 내놓은 LG전자도 이런 고민을 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18:9 비율 세로화면 뮤직비디오를 공개했고, 월요일 오전에는 웹툰 작가가 그린 18:9 배경화면을 내놨고, 같은 날 저녁에는 오직 18:9 세로 화면으로 제작된 단편 영화제를 열었습니다.

LG전자가 20일 오후 8시부터 18:9 비율 단편영화 세 편을 상영하는 ‘LG G6 18:9 세로영화제’를 열었습니다.

“세로 화면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LG전자가 20일 오후 8시부터 서울 CGV청담시네시티에서 18:9 비율로 제작된 단편영화 세 편을 상영하는 ‘LG G6 18:9 세로영화제’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의 특이한 점은 모든 단편영화가 오직 G6 스마트폰만, 그것도 가로가 아닌 세로 비율 화면으로만 찍혔다는 겁니다.

서울과 제주도에 떨어져 사는 부녀의 이야기를 그린 강대규 감독의 ‘기다림’, 키가 큰 남자 주인공과 작은 주인공의 시선 차이를 활용한 장세환 감독의 ‘커피빵’, 산 속에서 홀로 캠핑하던 남자에게 일어난 기묘한 이야기를 그린 석민우 감독의 ‘글램핑’ 등 총 세 작품이 공개됐습니다.

과연 스마트폰만 이용해서, 그것도 세로 비율로만 촬영된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영화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화질은 전문 장비로 촬영한 기존 영화에 비해 명암비 등에서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세 감독들의 고민이 여실히 엿보여 흥미로웠습니다.

서울과 제주도에 떨어져 사는 부녀의 이야기를 그린 ‘기다림’을 연출한 강대규 감독.

세로 화면의 한계를 거꾸로 이용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로 비율 화면은 운신의 폭이 좁고 자칫 잘못하면 갑갑한 느낌을 주기 쉽습니다. 등장인물 사이의 거리감이나 시야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압도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죠. 그러나 세 감독 모두 이런 한계를 상당히 절묘하게 극복해 냈습니다.

오히려 세로 화면이 어쩔 수 없이 가지기 마련인 한계를 거꾸로 이용해서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 들어 훔쳐 보는 듯한, 기묘한 거리감을 연출해 냈습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 공간은 관객들의 상상에 채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흥미로웠죠.

세 감독 모두 세로 화면의 한계를 상당히 절묘하게 극복해 냈습니다.

(사진은 18:9 비율 세로 사진 전시)

세 작품 중 가장 흥미있게 보았던 작품은 바로 ‘글램핑’입니다. ‘복수 3부작’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 연출부 출신인 석민우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 시작해 간간이 실소를 자아내다 미스터리로 복귀하고, 마지막 2분동안 진한 불편함을 남기는 문제작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감탄한 장면은 바로 좁은 텐트가 한 밤중에 갑자기 흔들리며 갑갑한 공간 안에 갇힌 주인공을 비추는 장면입니다. 시야를 좁히는 세로 비율 화면을 최대한 활용해서 마치 상자처럼 구성된 화면 안에 주인공을 가두는 효과를 냈습니다.

여전히 숙제를 남긴 세로 화면 콘텐츠

세로 화면으로만 만든 단편영화 세 편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은, 가로로 넓은 시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위의 영화 세 편은 영화감독들의 철저한 연구가 있었고, 특히 ‘글램핑’은 수작의 반열에 들 만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해, 세로 화면이 가진 장점은 물론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한계까지 고려해야 훌륭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일 행사장에서는 영화 영상이 사전에 공개되지 않도록 눈으로만 보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미처 모두 보여 드릴 수 없지만, LG전자는 3월 21일에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18:9 비율 단편영화 세 편을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LG전자는 3월 21일에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18:9 비율 단편영화 세 편을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권봉석 기자bskwon@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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