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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없어도 괜찮아" 외국어 장벽 허문 휴대용 번역기

인공지능 바탕으로 외국어 자동 번역하는 ‘로그바 일리’

일본을 찾은 이들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언어의 장벽이다.

(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일본정부관광국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10만 명에 이른다. 2016년 509만 명에서 무려 30% 이상 늘어난 것이다.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일본으로 취항하는 LCC(저비용항공사) 노선이 늘어나면서 국내 관광지와 거의 차이 없는 수준으로 여행비가 떨어진 탓이다.

그러나 일본을 찾은 이들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언어의 장벽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해도 획수를 줄인 약자를 쓰는데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는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는 우리 눈에는 그림에 가깝다. 게다가 일본은 공항을 벗어나면 영어조차 잘 통하지 않는다.

와이파이·블루투스 없이 순식간에 번역을

스마트폰이 있다면 번역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로밍 서비스나 현지 선불 유심칩을 쓰지 않고 와이파이만 이용한다면 막차를 놓쳤을 때, 혹은 탑승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비행기를 놓치기 직전일 때 등 정작 필요할 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22일 국내 시장에 출시된 웨어러블 음성 번역기, 일리는 이렇게 언어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길만 한 기기다. 버튼을 누르고 통역하고 싶은 문장을 우리말로 말하면 잠시 뒤 일본어로 번역된 문장을 들려준다. 심지어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테더링도 필요 없다.

페이스북에서 동영상 찾아보기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미 이 제품을 들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 여행자를 담은 영상을 접했을 법하다. 일본어 한 마디 없이 한국어로만 물건을 고르고 원하는 장소를 찾는 이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130만 번 이상 재생됐다.

22일 국내 출시된 초소형 웨어러블 번역기 일리.

고등학생 때 언어의 장벽 겪고 개발 결심

일리는 2013년 창업한 벤처기업인 로그바가 만들었다. 22일 서울 강남 L7 호텔에서 만난 로그바 CEO, 요시다 타쿠로는 일리를 개발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6년간 배우고 부모님에 부탁해 따로 영어 학원까지 다녔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처음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I want to have a water’라는 간단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게 제품 개발의 동기다.”

일리에 달린 버튼은 전원 버튼과 통역 시작 버튼, 언어 변환 버튼 등 총 3개에 불과하다. 요시다 CEO는 “원래는 볼륨 버튼도 달려 있었지만 이를 일일이 조절하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70세 부모님이 쉽게 쓸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최대한 단순하게 다듬었다”고 설명했다.

일리 본체에 달린 버튼은 고작 3개에 불과하다.

클라우드에서 학습 거친 AI를 손 안에

요즘 화제인 AI(인공지능)는 이 제품에도 우리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도록 스며들었다. 음성을 짧은 시간에 알아 듣고 번역하는 데 쓰이는 엔진은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딥러닝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학습을 거쳤다.

요시다 CEO는 “일리 본체에 내장된 프로세서나 메모리, 저장장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훈련을 마친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는 여행에 특화된 문장이나 단어만 담겨 있다”고 밝혔다.

내장된 단어나 문장에 대한 데이터는 크게 줄어 들었지만 한정된 저장공간을 유용하게 쓰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기업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 어떤 문장이나 단어가 많이 쓰였는지 파악한 다음 이를 분석해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남기고 전혀 안 쓰이는 데이터는 삭제하는 방식이다.

로그바 요시다 타쿠로 CEO는 “번역 엔진은 머신러닝을 통해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마치 외국에서 쓰는 부적처럼⋯

그러나 구글 번역, 한컴 지니톡 등 번역 앱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굳이 번역기를 사야 할까? 요시다 CEO는 “번역 앱은 많이 나와 있지만 이를 실제로 쓰는 사람은 적었다. 사용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 일본어 버전 제품을 일본에서 판매한 결과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답했다.

그는 “해외 여행에서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외국어이다. 1년에 한두 번 쓰더라도 갖고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물어 보니 꼭 쓸 일이 없더라도 가지고만 있어도 안심이 되는 부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부모님에게 선물하거나,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등 걱정되는 마음에 구입해서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리에 관한 문의 중 기업 고객의 문의는 30%나 된다. 특히 관광객들에게 다른 음식이나 옷을 권유해서 매출을 올리고 싶은 유통이나 쇼핑 관련 업체의 관심이 높다는 게 요시다 CEO의 설명이다.

유통이나 쇼핑 관련 업계가 일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어 번역 성능 향상시킬 것”

기자는 일본 출장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간신히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초급 수준의 일본어 학습자다. 여행다니며 물어볼 법한 문장을 말해 보니 마치 여행 회화책에서 본 것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번역해 준다. 그러나 약간 복잡한 문장을 번역시킬 경우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구어체 문장 번역도 자주 틀린다.

요시다 CEO는 “한국어 음성인식과 번역은 영어 등 다른 언어보다 처리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적절한 튜닝을 통해 일정 수준까지 줄일 수 있고 아직 초기 단계라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담당자 역시 “단어나 문장은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 제품에 관심을 보일 소비자는 어떤 사람일까. 요시다 CEO는 40-60대 중장년층을 꼽았다. “40대에서 60대 사이,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지만 언어에 부담을 느끼는 중장년층에 수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20대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지만 일본 등 다른 나라를 보다 적극적으로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이라면 구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리의 주 고객층으로 40대-60대 중장년층이 꼽힌다.

권봉석 기자bskwon@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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