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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왜 펜슬을 꺼내들 수 밖에 없었나

“손가락이 만능은 아니더라”

애플이 정밀한 묘사가 가능한 전자펜 ‘애플 펜슬’을 선보였다.

(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첫 아이폰을 공개하며 남긴 어록 중 “아무도 스타일러스펜을 원하지 않는다”가 있다. 일일이 본체에서 꺼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좌표가 비뚤어져 보정 작업이 필요한 감압식 터치펜의 단점을 꼬집은 말이었다. 그리고 정전식 멀티터치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손톱으로 터치가 안 된다면 스마트폰이 아닐 뿐더러 스타일러스를 이용해 더 정밀한 터치가 가능하다는 저항의 목소리는 2010년이 지나면서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그랬던 애플이 아이폰 첫 출시 이후 8년, 아이패드 출시 이후 5년만에 전문가용 제품인 아이패드 프로와 함께 ‘애플 펜슬’을 선보였다. 이름만 연필(Pencil)이지 작동 원리를 보면 영락없는 스타일러스 펜이다.

“터치펜 필요 없다”던 애플, 돌아선 이유는…

물론 애플이 시대에 역행해 감압식 터치펜을 들고 나오거나 정전식 터치 인터페이스의 유용성을 깡그리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가락이면 다 될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는 자아 성찰에 더 가깝다. 단순히 화면을 조작하거나 스크린 키보드를 누를때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정밀함’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손가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전이나 휴대 없이 쓸 수 있는 편리한 도구다. 하지만 0.5mm가 채 안되는 화소가 빼곡이 모여 있는 태블릿 화면에 손가락만으로 정밀한 선을 긋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미 시중에 나온 터치펜을 이용하면 필압에 따라 굵기가 자동으로 조절되지만 인식 속도나 정밀도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하물며 전문가의 작업 도구가 되라는 의미로 ‘프로’라는 이름까지 붙인 제품에 “터치펜은 다른 회사 제품을 쓰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손가락만 써서 이런 정밀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전자펜 원천기술 확보 후 시장에 내놨다

애플 펜슬은 이름 그대로 연필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편하게 쓰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터치펜, 특히 필압 조절이 가능한 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반응속도다. 하지만 적어도 애플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거의 지연 시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애플 펜슬을 감지하면 감지 속도를 손가락의 두 배인 초당 최대 240회까지 높인다는 것이 애플 설명이다.

펜촉 안에 내장된 센서가 펜을 기울이거나 누르는 압력을 측정해 선 굵기나 농담도 자동으로 조절한다. 심지어 버튼도 안 달려 있다. 이런 애플 펜슬의 특징은 2014년부터 애플이 꾸준히 출원한 특허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바 있다. 2014년 1월에 출원한 특허는 전자펜의 방향 감지 기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고, 2014년 11월에 출원한 특허는 여러 센서를 이용해 전자펜 감지 속도를 높이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애플이 출원한 전자펜 관련 특허만 10개를 훌쩍 넘는다.

마지막 남은 퍼즐 ‘생산성’ 이번에는 채워질까

메일이나 메모 등 iOS 9 기본 앱은 애플 펜슬을 완벽히 지원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플 펜슬이 애플 전용은 아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가 iOS용 오피스 앱을 통해, 어도비가 포토샵 픽스를 통해 애플 펜슬이 얼마나 유용한지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사진 편집이나 설계, 그림 등 이미 앱스토어에 올라온 많은 앱도 애플 펜슬을 지원할 전망이다. 이미 iOS용 원노트 앱이나 에버노트 앱은 애플 펜슬 지원 1순위 후보로 꼽힌다.

물론 애플 펜슬은 필수 액세서리가 아니다. 아이패드 프로에 기존 정전식 터치펜을 써도 작동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뿐만 아니라 가격도 99달러(한화 약 11만 8천원)로 다른 제품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애플 펜슬은 그동안 아이패드가 여전히 맞추지 못했던 퍼즐인 ‘생산성’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전자펜과 키보드를 무기로 마이크로소프트 캐시카우로 부상한 서피스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있다.

메일이나 메모 등 iOS 9 기본 앱은 애플 펜슬을 완벽히 지원할 예정이다.

권봉석 기자bskwon@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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