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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로 재개봉하는 명작 '디어 헌터', 수채화처럼 번지는 감동을 극장에서 만나다

극장서 울려퍼지는 OST 존 윌리엄스 '카바티나'까지···23일 재개봉

故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걸작 <디어 헌터> 포스터

(씨넷코리아=윤현종 기자) 날씨가 더워질 때면 여름철 모기처럼 극장에 항상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전쟁 영화. 선악이 명확한데다 실화나 가상의 배경을 토대로 스케일까지 부풀리면 이만한 액션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멋진 영웅을 등장시키면 게임 끝이다. 최근에는 가면이나 방패는 물론이고 우주를 넘어 평행 우주까지 끌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영화와 달리 전쟁의 실상은 비극에 가깝다. 특히 영화의 거대 자본들이 모두 모여 있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감독의 시선은 20세기 근현대사의 굵직한 전쟁사를 다룰 때 조금 더 엄격한 잣대를 내세운다. 그리고 1960~70년 사이 치러진 미군이 패배한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전쟁 영화라는 장르를 대변할 정도로 20세기 가장 유명한 영화로 꼽히는 명작들이다. 말론 브란도나 윌렘 대포와 같은 명배우들 연기와 더불어 네이팜탄을 쏟아 붓는 명장면들도 있겠지만 역시 이들 영화를 대변하는 건 전쟁에서 겪는 군인들의 피눈물이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4K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디어 헌터>에서 마이클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의 30대 젊은 시절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블루필름웍스)

1978년 등장한 故 마이클 치미노 감독 영화 <디어 헌터>는 앞선 두 영화와 같이 20세기 중반 20여 년간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진 베트남 전쟁 시대를 주 무대로 삼았다. 지금은 <대부2>나 <히트>로 대표되는 연기파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제5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명배우 ‘크리스토퍼 월켄’, 그리고 아카데미의 여왕 ‘메릴 스트립’의 젊은 시절을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미국의 작은 철강소에 다니는 마이클(로버트 드니로)과 닉(크리스토퍼 월켄)은 동네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스티븐(존 세비지)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며칠 뒤 미군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다. 동네에서는 누구나 다 알 만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결국 전쟁 속 포로가 돼 서로의 목숨을 건 러시안 룰렛 게임을 겪게 된다. 마이클과 닉, 스티븐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뿔뿔이 흩어진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 전쟁의 끝을 기다린다.

43년 만에 4K로 부활해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는 <디어 헌터> 사슴 사냥 장면. (사진=블루필름웍스)

<디어 헌터>는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이 명분도, 소득도 없었던 기나긴 전쟁 속에 그들이 어떻게 소모됐는지, 전쟁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어떤 비극을 마주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것도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산 속 풍경과 작은 철강소로 이뤄진 미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해 슬픔이 더 배가된다. 특히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새롭게 부활한 사슴 사냥씬은 수채화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배경이 된 미국 캐스케이드 산맥의 ‘베이커 산’을 배경으로마이클이 사슴 사냥을 위해 걷는 장면은 명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숨이 막히는 장면이다. 여기에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의 카바티나(Cavatina) OST는 43년이란 세월을 넘는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이 영화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인 러시안 룰렛 씬도 4K로 새롭게 부활했다. 지옥 앞에 선 명배우들의 독기가 가득한 표정 연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충격적인 장면인 <디어 헌터> 러시안 룰렛 장면. (사진=블루필름웍스)

<디어 헌터>라는 영화를 40년이 지난 2022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건 시네필에겐 행운이다. 다만 빠른 진행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전쟁에 참여하기까지 걸리는 그 1시간이 10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한국 관객이라면 다소 낯선 결혼식 과정과 피로연, 그리고 사냥을 하기까지 이동하는 기나 긴 장면들을 모두 감내해야만 비로소 군인이 된 세 친구의 전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 포스터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러시안 룰렛 씬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천천히 진행되는 영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짧은 일상을 담은 결혼식과 사냥 장면을 봐야만 전쟁을 겪고 난 뒤의 마이클과 닉, 스티븐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위대한 전쟁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방(One Shot)이면 사슴을 죽이는데 충분하다는 마이클의 말처럼 영화는 마지막 몰아치는 한 방을 위해 묵묵히 전진한다. 마이클이 고향에서 사슴을 사냥하기 전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처럼.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다시 찾아온 <디어 헌터>는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재개봉일은 6월 23일.

<디어 헌터> 영화 속 베트남 전쟁 씬. (사진=블루필름웍스)

윤현종 기자mandu@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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