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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엡손이 걸어온 발자취, 시계로 시작된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다

일본 나가노현 스와시에 위치한 본사 '세이코 엡손'···브랜드 역사와 제품 라인업 총집결

엡손 스와 박물관 '메모리얼 홀' 외관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씨넷코리아)

(씨넷코리아=신동민 기자) 우리가 흔히 프린터를 만드는 기업으로 알고 있는 엡손의 일본 본사는 ‘세이코 엡손’이라는 사명으로, 시계 제조 기술이 그 시작이 됐다. 일본 나가노현 스와시에 위치한 세이코 엡손 본사에는 회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박물관이 옛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

세이코 엡손 본사는 생각보다 멀고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기자단은 김포공항을 출발해 도쿄 하네다공항에 내려 버스로 꼬박 3시간, 약 220km를 달려 나가노현 스와시에 도착했다. 쾌청했던 날씨는 이내 바람을 동반한 비를 뿌리며 손님을 맞았다. 이 지역 상징인 스와 호수는 언뜻 보면 바다로 착각할 만큼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일본 나가노현에 있는 스와 호수는 바다로 착각할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씨넷코리아)

나가노현 스와시는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시골 마을이다. 이 지역은 199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곳으로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이 즐비하다. 이런 곳을 세이코 엡손이 본거지로 삼았다니 의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역 경제를 사실상 세이코 엡손이 책임지고 있는 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포스코와 같은 느낌이다.

세이코 엡손은 초소형, 초정밀, 고효율 기술 철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이러한 이념으로 가정에서부터 산업, 상업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환경을 책임지겠다는 목표를 향해 경주하고 있다. 세이코 엡손이 이끄는 엡손 그룹은 홈·오피스 프린팅, 프로젝터, 산업용 로봇, 웨어러블(시계)까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며 전 세계에 약 8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가 야마자키 히사오 세이코 엡손 창립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씨넷코리아)

'메모리얼 홀'이라 불리는 현지 내 박물관은 1945년 10월 엡손 전신인 '다이와공업 주식회사' 내 행정 건물을 리모델링해 오픈한 곳이다. 지난해 개장된 이 박물관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같은 해 2월 일본 정부로부터 유형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다.

세이코 엡손 과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세이코와 엡손 양사가 분사와 합병을 거듭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엡손 창립자인 야마자키 히사오는 일찍이 시계 숍을 운영하던 부모님 손에 자라 시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살던 나가노현은 공기가 건조하면서 깨끗하고 고도가 높아 ‘동양의 스위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야마자키는 도쿄에 생산시설을 갖췄던 세이코샤를 설득해 스와시에 시계공장을 짓게 됐다.

세이코 엡손이 1969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전자식 쿼츠 손목시계가 전시돼 있다. (사진=씨넷코리아)

엡손 스와 박물관은 기업의 역사와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과 볼거리로 가득했다. 야마자키 창립자는 공장에 대한 애착이 강해 매일 같이 직접 화재 점검을 다녔다고 한다. 일본은 대부분 목조건물 형태를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화재 경보에 쓰이던 종도 만날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엡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와공업 주식회사에서 만든 첫 여성용 쿼츠 손목시계도 전시됐다. 시계 실물은 현 시대에 출시되고 있는 시계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세련미와 우아함을 자랑했다.

사람 키보다 큰 쿼츠 시계 장비는 정확한 시간 체크가 필요한 방송국에서 주로 사용됐다. (사진=씨넷코리아)

세이코 엡손은 시계 분야에서 혁신이라고 할 만한 업적을 이뤘다. 그 대표적인 예는 1960년대 말, 사람 키보다 큰 쿼츠 시계 장치를 손목시계 사이즈로 작게 만든 것이다. 이는 쿼츠 방식 시계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였다고 한다. 커다란 쿼츠 시계 장치는 정확한 시간을 캐치해야 했던 방송국에서 주로 사용되던 장비였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세이코 엡손은 전자시계도 만들어냈다. 당시 전자시계 안에 사용된 디스플레이는 현시대에 이르러 엡손의 프로젝터 사업의 발판이 됐다. 또 세이코 엡손 최초의 프린터 실물도 만나볼 수 있었다. 모델명은 EP-101. 기업명 ‘엡손(EPSON)'은 재미있는 의미가 담겨있다. EP는 전자식 프린터(electronic printer)라는 뜻이며 후손, 후세를 의미하는 SON이 합쳐져 지금의 EPSON이 됐다. 전자식 프린터의 후손을 우리가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엡손이 글로벌 도약을 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프린터 사업이 시작이 됐다.

세이코 엡손 첫 프린터 'EP-101' (사진=씨넷코리아)

역사 기행 투어가 끝난 후 모노즈쿠리 뮤지엄을 둘러보는 시간도 주어졌다. 이곳은 세이코 엡손 제품의 히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둘러볼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모든 제품 라인업을 한자리에 집대성한 공간이다.

세이코 엡손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분야에 사업을 확장했다. 모노즈쿠리 뮤지엄에는 프린터와 프로젝터 등 다양한 분야의 시초가 됐던 모델부터,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초소형 로봇, TV워치, PC, 카메라, 심지어 피아노까지 전시돼 있다. 그만큼 세이코 엡손은 다양한 분야로 도전을 쉬지 않았고, 때로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한편, 알래스테어 번 세이코 엡손 PR·IR 부문 매니저는 “보다 효율적이고 콤팩트하며 정밀한 기술을 활용해 사람과 사물, 정보를 연결하고, 지역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며 “특히 환경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기업 이념에 대해 설명했다. 

세이코 엡손이 1993년 개발한 초소형 쥐 로봇은 불빛을 비추면 따라 움직인다. (사진=씨넷코리아)
세이코 엡손이 만들었던 TV워치도 전시됐다. (사진=씨넷코리아)
세이코 엡손의 프린터는 열을 발생시키지 않는 '히트 프리(Heat Free)' 기술을 자랑한다. 덕분에 우주선에 실려 날아간 유일한 프린터가 됐다. (사진=씨넷코리아)
과거 세이코 엡손이 출시했던 PC 제품 라인업도 눈길을 끌었다. (사진=씨넷코리아)

신동민 기자shine@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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